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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고급 패션 매거진 ‘런웨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뉴욕의 고급 패션 매거진 ‘런웨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패션계의 거물 미란다 프리슬리와 그녀의 어시스턴트 앤디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상하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복잡한 구조가 숨어 있다.
직장인이라면 이 영화의 수많은 장면에서 낯설지 않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야근, 끝없는 업무 요구, 개인 생활의 침해는 현실 직장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장면들이다. 특히 상사의 사적인 요구를 ‘일’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은 영화 속 앤디의 고군분투와 그대로 겹친다.
“그건 네가 일을 못하니까 그래”라는 무언의 압박은 많은 직장인들에게도 익숙하다. 앤디가 점점 변화해 가는 모습은 단순히 옷차림만의 변화가 아니다. 생존하기 위한 적응, 그리고 점차 체화되어가는 조직의 논리를 상징한다.
“모두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해” – 성공은 누구의 기준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 중 하나는 미란다가 앤디에게 던지는 말이다.
“Everyone wants this. Everyone wants to be us.”
이 말은 겉으로는 성공한 사람들의 자부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이 구조가 얼마나 강압적인지를 보여주는 대사다. 모두가 원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포기하는 선택은 곧 ‘패배’로 간주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직장인들은 안정된 수입, 명함에 적힌 회사 이름, 타인의 인정 때문에 지금의 자리를 버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대사는 동시에 우리에게 묻는다. “그 자리를 정말로 원하냐”고. 그것이 진짜 내 삶의 목표였는지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직장이라는 공간은 자아 실현의 장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아 소멸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앤디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런웨이에 들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좋은 기자’가 아니라 ‘좋은 어시스턴트’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바꾸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종종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 꿈을 향한 과정인가, 아니면 남이 만든 성공의 틀에 맞추기 위한 생존인가?
‘성공’이 아닌 ‘선택’을 말하는 용기
앤디는 영화 후반부, 미란다의 조수로서 결정적인 기회를 얻는다. 그녀가 미란다처럼 된다면, 분명 업계에서 빠르게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앤디는 그 길을 걷지 않는다.
이 장면은 많은 직장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상사의 기대에 맞춰야 할까, 아니면 내 신념을 지켜야 할까. 무조건적인 충성이나 희생이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때로는 자아를 갉아먹는 독이 될 수 있다.
앤디가 내린 결정은 우리에게 말한다. 일에서 진정한 가치는 직위나 연봉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했는지에 있다.
또 하나 인상 깊은 대사에서 그 메시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You sold your soul the day you put on that first pair of Jimmy Choos.”
이 말은 앤디가 조직에 동화되며 처음으로 자신을 잃은 순간을 꼬집는다. 외형적 성공이 내면의 방향을 빼앗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니다.
직장 속 나를 지키는 법
직장은 때때로 전쟁터 같다. 실적과 경쟁, 인정욕구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는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이 단순한 질문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화려한 직업, 누구나 부러워하는 환경 속에서도 앤디는 외롭고 혼란스럽다. 결국 그녀는 원래 꿈꾸었던 저널리즘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 선택이 화려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현실의 직장인들에게 이 영화는 말한다. 눈부신 기회 앞에서 길을 잃을 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 자신의 기준으로 ‘성공’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결국 앤디는 직장을 그만두지만, 삶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진짜 시작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의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이 될 수는 없다. 때로는 멈추고, 돌아서고, 다시 질문을 던지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그 삶을 위해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단지 패션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며,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영화다.